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헤로데 왕조 (문단 편집) === [[헤로데 대왕]](헤로데 1세) 치세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헤로데 대왕)] [[유대인]]들에 흡수된 [[에돔]]의 유력가문 출신인 안티파테르(안티파텔)와 나바테아 왕국의 페트라([[요르단강]] 동쪽)의 [[공주]] [[키프로스]]의 둘째 아들,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유아대학살'''[* 당시 해당지역 인구를 토대로 추정하면 2살 이하의 사내아이 약 20여 명을 학살되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가톨릭]]에서는 이를 근거로 12월 28일을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로 기념한다. 다만 실제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역사적 기록은 없어서 사건의 실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역사가들이 많다. 다만 그런 역사가들도 그가 저기 권력을 위해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인물이다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는 편이다.]을 했다고 알려진 헤로데왕이다. 이스라엘([[야곱]])의 후손이 아니면서 이스라엘 왕족이 된 사람이다. 그런 이유로 당시 유대 백성들한테 헤롯 대왕과 헤로데 왕조의 사람들은 사실상 외국인으로 취급받았고, 그다지 백성들로부터 충성심도 얻지 못했다. 그 무렵 유대의 성직자들 중 상당수는 헤롯 대왕을 거짓 왕이라며 증오하였고, 헤롯 대왕이 죽자 유대 각지에서 헤로데 왕조에 반대하는 수많은 반란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현재 [[이스라엘]]에선 나름대로 대왕으로 칭송하는 편이다. 그가 유대인도 아니고 다윗의 후손도 아닌데도 말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면 대표적인 이유는 하나는 성서와 본문에서 나오듯, 성전을 재건축했기 때문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에서 현지 취재를 할 때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이, "기독교 나라에서 신약 성경을 근거로 헤로데 대왕을 비하하는 일을 좀 집어쳤으면 한다"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이다. 사실 유대교는 로마 황제를 위해 제물을 바치는 것을 제외하고는 로마 내에서 가장 높은 종교적 자치권을 누리고 있었고, 헤로데왕은 이를 보호하는 대표적 인물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다만 헤로데가 당대 유다인들에게 미움 받았던 군주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 베들레헴 유아 학살에 대한 역사적 진위 여부를 논외로 하더라도, 헤로데가 매우 잔혹한 군주여다는 것은 성경과 성경 외 문헌에서 교차검증이 되며, 사제 가문 및 열혈당원들과의 대립은 당시 유다인들에게 헤로데가 어떻게 취급 받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당대 유다인들에게, 헤로데는 유다인조차 아닌 에돔(이두매아) 출신의 비정통 이방인 군주에 불과했다. 헤로데에 대한 현대 이스라엘의 고평가는, 현대에는 헤로데의 혈통 문제와 왕위의 비정통성이 아무래도 좋은 문제가 되었고, 잔혹성은 별로 와닿지 않는 문제가 되었으며, 그보다는 영토 확장 등 국익을 증진하고 토목 인프라를 건설하는 노회한 정치인으로서의 면모가 부각되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